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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규 선생은 3·1운동 직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진 노년의 독립운동가이자, 만주와 함경도 일대에서 교육·계몽운동을 펼친 한의사 출신 의사(義士)입니다. 강직하고 대쪽 같은 성품에 더해 인자하고 온화한 인격을 겸비한 인물로 전해지며, 훤칠한 키와 둥근 얼굴, 흰 수염이 돋보이는 외모가 특징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주요 업적
3·1운동 이전 함경남도 홍원에서 사립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신학문을 보급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만주 길림성 요하현(라오허현) 신흥동에서 동포들을 모아 마을을 조직하고 광동학교를 설립해 청소년 교육과 독립사상 함양에 힘썼습니다.
1919년 대한국민노인동맹단에 가입해 요하현 지부 책임자로 활동하며, 만세시위 조직과 무장투쟁 기반 조성에 참여했습니다.
1919년 9월 2일 서울 남대문역(현 서울역) 광장에서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의 ‘문화통치’ 술책을 폭로하고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국내외에 알린 대표적 거사로 평가됩니다.
체포 후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를 두지 않고 상고이유서를 직접 작성해 자신의 의거가 정의와 인도, 동양 평화를 위한 정당한 행동임을 역설하며 항일의지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성격과 인품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도 꾸준히 학문을 익히며 자수성가한 이력에서처럼 근면하고 자주적인 기질이 두드러집니다.
한의사이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춰 교육·계몽운동으로 영역을 넓힌 점에서 실천적이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됩니다.
65세의 고령에 폭탄 거사를 감행한 결정과,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는 유언에서처럼, 담대함과 겸손, 강한 책임의식이 함께 드러납니다.
재판과 옥중에서도 동료를 변호하고 청년들의 교육을 염려했다는 기록에서, 엄격함 속에서도 후대에 대한 애정과 도덕적 책임감을 중시한 인격이 잘 나타납니다.
외모적 특징
키가 크고 체격이 훤칠한 편이었으며, 둥근 얼굴에 은빛 호랑이 수염과 같은 희고 풍성한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동시대 기사에 묘사됩니다.
1920년 재판 당시에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고 흰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기록되며, 이후 동상·흉상에서도 백발과 긴 흰 수염, 단정한 한복 차림의 노년 독립투사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서울역 광장 등에 세워진 동상 역시 백발·백수염에 곧은 자세의 노인 모습으로 제작되어, “청년 같은 노인”이라는 별칭처럼 나이는 많지만 기개와 기세가 살아 있는 인상을 강조합니다